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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쓰는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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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우물 안 개구리 – 2023.01.22.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어렸을 땐 그냥 내 몸집이 작아서 우물을 못 나가는 줄 알았다. 조금 커서 보니, 우물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 매일같이 뛰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연습했고 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보니 내가 작은 것도 아니었고 내 뛰는 연습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물이 너무 컸던 건데 난 그것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고 내가 영웅이라도 되겠다는 것 마냥 그렇게 연습을 해댔던 것이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고 우물에 빠져서 저 나이 되도록 탈출하지 못한 것을 한심하다고 비난했으며 반드시 이곳을 나가 위에서 여기를 내려다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결국 결국 나는 우물 안 개구리 2023. 2. 6.
#11 눈물 – 2023.01.22. 어렸을 때 눈물을 흘렸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모든 게 자기 맘대로 되던 시절에 엄마가 장난감 로봇을 안 사주거나 내가 가던 길을 돌부리가 막아 넘어지거나 같은 뭔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같은 그런 시덥잖은 이유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유가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져서 울음의 가치가 사라져서일까 내 맘대로 살고 모든 게 내 뜻대로 움직이던 그때가 그립다. 2023. 2. 6.
#10 모자(母子) – 2023.01.20. 설을 맞아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간다. 할머니 연세가 벌써 100을 앞두고 계시고, 얼마 전부터는 치매증상도 생겨 주변 사람들을 잘 알아보시지도 못한다. 나에게 할머니는 아직도 주섬주섬 용돈을 챙겨주시던 분으로 기억되는데 어느새 이렇게 쇠약해지셔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신다. 할머니 옆에 앉아 엄마가 물어본다. “우리 누군지 알아보시겠어??” “몰라” 아빠를 가리키며 엄마가 말한다. “이사람 누구야 ?” “몰라” 아빠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렇게 엄마는 할머니께 올 때마다 아빠에 대해 설명을 하곤 한다. 며느리가, 기억도 못하는 당신께 당신의 아들에 대해 설명한다.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겨우 30분 만나러 4시간을 차 타고 온 아빠의 심경을 나는 감히 이해할 수조차 없다. 처음에는 그.. 2023. 2. 6.
#9 각도 – 2022.12.20.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와 나 사이엔 각도가 생긴다. 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너에게 몸을 기대며 네가 비에 맞지 않게 우산을 기울인다. 너에게 기울이고 너에게 다가가서 너를 사랑한다. // 어떤 TV 광고를 보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세요 그런 맥락의... 2023. 2. 6.
#8 쉽게 쓰여진 시 – 2022.12.05. 누군가를 평가하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고 속으로 그를 깎아내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남을 아주 쉽게 폄하하고, 깎아내리며, 그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혀가 짧은 누군가를 보고 내가 그를 흉내내며 우리가 웃는 동안 나의 우스꽝스러운 흉내를 듣고도 못들은 채 넘어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듯 그 또한 당신의 소중한 자식이었을테니. 아주 쉽고, 누구나 알 수 있으며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남을 쉽게 비하하지 말라는 말은 아주 어렵고, 아무나 알 순 없으며 그리 쉽지도 않은 것 같다. 내가 그를 쉽게 깎아내린 것처럼 이리도 쉽게 쓰여진 시 또한 누군가를 통해 쉽게 폄하당한다. 내가 그래왔던.. 2023. 2. 6.
#7 지우개 – 2022.12.03. SNS에서, 일본의 초등학생이 썼다는 한 시를 보았다. “저눈 말을 기역하는 지우게입니다. 여러 문방구에서 팔이고 있슴니다. 잘 사감니다. 그리고, 반으 모두가 저를 씀니다. 하지만, 모두가 지우는 거슨 틀린 말이기 때문애 저눈 틀린 말바께 기억하지 못함니다.” 지우개가 걸어왔던 길은 오답으로 가득찬 길이었겠지. 지우개에 의해 비로소 길이 깨끗해졌고 누군가는 그 길을 편하게 다니겠지만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 누가 고마워하기라도 할까 내가 지우개였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고 인정해주지도 않지만 지우개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오롯이 상대만을 위한 삶을 사는 이.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한다. // 일본 초등학생이 쓴 시.. 2023. 2. 6.
#6 비와 우비 – 2022.12.01. 비가 내린다. 빗물은 상처난 곳을 더욱 더 쓰라리게 만들며 나를 쓸고 내려간다. 나는 이제 비가 무섭고 비가 싫다. 그래서 계속, 계속해서 비를 피한다. 상처가 난 곳을 비가 쓸고, 아프고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통증에 무뎌졌고 그런 감각들에, 그리고 그런 감정들 하나하나에 둔해지기 시작해질 무렵 우비를 하나 샀다. 우비를 입고 비를 맞는다. 아무렇지도 않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아프지 않다는 것. 나는 이제 장화를 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장화를 신고 첨벙첨벙 웅덩이를 밟고 다닌다.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웅덩이를 뛰어다닌다. 이제는 그런 쓰라림도, 아픔도, 슬픔도 없다. 나는 이제 비오기를 기다리고, 비가 오면 우비와 장화를 챙겨 밖으로 당당히 나간다. 옷장보단 빨래건조대가 .. 2023. 2. 6.
#5 꿈 – 2018년 언젠가 꿈을 꾸었다. 꿈을 이루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자 그 꿈은 사라지고 있었다. 붙잡으려 발버둥 쳐도 잡히지 않았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버렸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살아갈 뿐이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꿈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날 책장 서랍에서 찾은 봉투 하나. 봉투에는 내가 과거에 꿈을 꾸며 만들었던 팔찌가 담겨있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매일 팔찌를 차고서 당당히 꿈을 키워갔는데 그리고 팔찌를 차고 잠도 잤는데 이제는 내 꿈이 어느새 허상이 되어 있었다. 팔찌를 차며 꿈을 이루리라 다짐했던 당당했던 과거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위태로.. 2023. 2. 6.
#4 파도 – 2022.11.23. 인간관계는 밀물과 썰물이다. 밀물 때 깊게 들어온 모래는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깊지 않게 들어온 모래는 가벼운 썰물에도 쉽게 나가지만, 그만큼 가볍게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아주 깊게 들어와 빠져나가지 않을 것 같던 모래도 강한 밀물에는 속절없이 빠져나간다. 결국 그런 것 같다. 긴긴 세월동안 밀물과 썰물처럼 여러 관계들이 나를 찾아오고 나간다.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깊게 박힌 모래처럼 오래 머무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래조차 강한 파도에 쓸려나간다. 잠시 머무르는 모래에 의미부여하지 말자. 그럼 깊게박힌 모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의문 투성이네. // 어떤 친구와 절연하고 썼던 시였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참 어렵습니다..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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