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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쓰는 개발자
생각 정리/시

#3 포기할 용기 – 2022.08.08.

by poetDeveloper 2023. 2. 6.

암벽을 오른다.

가르다란 줄 하나만을 의지한채 암벽을 애써 기어 오른다.

 

본적도 없는 저기 정상 너머에는 무언가 있겠지.

내가 느끼지 못한 감정과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겠지.

아니,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니 반드시 있어야만 하지.

스스로 최면을 걸고 암벽을 오른다.

 

정상에서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 상처가 나도 그저 묵묵히 오른다.

비바람이 불어도, 뜨거운 햇살이 내려도 그저 묵묵히 오른다.

대화할 사람조차 없는 고독함 속에서 평온함을 찾는 연습을 한다.

 

마침내 정상이 보이고 터져나오는 설움과 눈물을 꾹 참고 손을 뻗는다.

그러나 발을 내딛는 순간 미끄러지고 하염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반복되는 등반과 낙하.

 

실패의 반복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무얼 위해서 이걸 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저기 정상 너머에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지.

허허벌판 황무지뿐인 정상을 위해 오르는 것은 아닐까.

그저 답이 없는 맹목적인 물음만을 내게 던질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놓는다.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떨어지고, 마침내 멈춘다.

로프와 함께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이 맴돈다.

끝났다는 것에 느끼는 안도감일까, 이룬 것 하나 없이 내던진 시간에 대한 후회일까.

 

지금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것.

 

내가 한 포기가 가장 큰 용기는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정상을 밟았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가짐이었고,

그에 맞먹는 용기를 가지고 긴 여정의 중간 어딘가에서 손을 놓았을 나를 위해서

맨 밑바닥에 있는 내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긴 여정의 막을 내리는 비가 내린다.

정상의 문턱에서 몇 번이나 나를 떨어뜨린 비가 내린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와 함께 미련을 씻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지.

포기만큼이나 시작도 용기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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